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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의 미용역사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온라인 컨텐츠 교육 연구소 2023. 11. 30. 07:18

한국은 유교시대의 이념에 따라 머리카락을 자신의 신체처럼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머리카락을 다루는 미용업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발전해왔을까요? 프랜차이즈를 비롯해 개인이 운영하는 사업장까지 10만 개가 넘는 미용실이 가동되고 있는 현재,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않으면 미래를 예측하고 살아남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삼한시대에 남자들이 상투를 틀기 시작했고 삼국시대 고구려에는 얹은머리, 쪽머리, 증발머리 등의 다양한
헤어스타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보통 자신의 신분을 알리기 위한 용도일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여성들이 신문명에 의한 미용에 눈을 뜨게 된 것은 경술국치 이후부터로, 일본이나 중국 등 외국 각지를 순방하거나 공부하고 돌아온 신여성 등에 의해서 급진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1920년대에 들어가서 이숙종 여사의 높은 머리, 일명 다까머리와 김활란 여사의 단발머리 모던걸이 우리나라 여성들의 두발형에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켜 일대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1933년 3월 초순경에는 오엽주 여사가 일본에서 미용 연구를 하고 돌아와, 서울 종로에 있는 화신 백화점 내에 화신 미용원을 개설하여 두발형의 개화와 변혁을 가져왔습니다. 이어 1945년 현대 미용학원이 설립, 1950년에 우리나라 최초 미용학교로 정화 고등기술학교가 있었으며 현재 정화예술대학으로 되었습니다.


6.25 동란 후 사회가 안정됨에 따라 계절과 연령에 따라 헤어스타일이 다양해졌으나, 외국 영화배우들의 모습으로 모방 된 것이 많았고,
신문과 잡지에 소개되는 많은 정도로 인해 획일적으로 유행하기도 하였습니다.
1960년대에는 커트 기술의 향상과 다양화로 머리 모양의 변화가 많았으며, 업스타일과 보브 스타일 단발머리가 유행하였습니다.


1965년경부터 가발 사용이 증가하였으며, 1967년에는 동양인의 큰 얼굴과 편편한 두상을 보완하기 위하여 조형미를 나타내는 기하학적인 헤어스타일이 유행하였습니다.
1970년대에는 대체로 퍼머넌트와 커트 기법을 병행한 헤어스타일이 주류를 이루었고, 1980년대에는 다양한 퍼머넌트 기법이 개발되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자연스럽고 손질하기 쉬운 헤어스타일과 다양한 색으로 모발의 색을 바꾸어 주는 염색 및 탈색이
유행하고 특히 건강한 모발을 유지시키기 위한 모발 및 두피 트리트먼트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습니다.


특별히 경주 월드 이ㆍ미용기술학원은 이ㆍ미용 기능장 전문취득학원으로 이ㆍ미용 업계의 박사라고 불리는 이ㆍ미용 기능장을 주1회 수업으로 여러분을 당당한 이ㆍ미용 기능장으로. 만들어 드리고 있습니다.주) K-world beauty GROUP이라고도 불리우는 경주 월드 이°미용기술학원은 대한민국 이°미용. 기능장 경주1호 정진숙대표님과 대한민국 최초 이°미용 기능장 동시취득하신 배호 학장님이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배호학장님께서는 대한민국 최초 이°미용 기능장 동시 취득자이시면서 아래와 같이 미용박사, 대학교 교수직으로 재직 중에 계신 이°미용계의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 미용 치유학박사

● 전) 용인대학교  미용학과 초빙교수

● 전) 서정대학교 뷰티. 아트과 특임교수

● 전) 관동대학교 뷰티디자인과 교수

● 전) 우석대학교 평교원 미용학과. 학과장

●현) 우석대학교 경영문화 대학원. 미용경영학과 교수 재직 중